가끔은 스케이트장 노트가 아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적어두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오늘은 그런 날이네요. 얼마 전 우연히 접한 소식 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강원랜드에서 도박 과몰입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과 가족이 함께하는 치유캠프를 열었다는 이야기였어요. (연합뉴스 보도) 처음엔 ‘카지노 기업이 치유 캠프라니’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곱씹어 보니 참 의미 있는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런 소식을 처음 접하면 누구나 비슷한 의문을 품게 되죠. 도박 산업을 운영하는 기업이 ‘치유’를 말하는 게 어쩐지 어색하게 들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캠프는 단순한 홍보 이벤트가 아니라, 과몰입으로 고통받는 개인과 그 가족을 실제로 지원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는 점이 눈에 띄어요. 문제를 일으킨 주체가 문제 해결에도 나서는 ‘이해상충’의 상황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시도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몰아붙이는 것도 곤란하겠죠. 중요한 건 캠프의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일 테니까요.
회복이라는 건 혼자서는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도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 스케이트장을 오가며 공부하던 시절, 힘들 때마다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 캠프가 ‘가족과 함께’라는 점이 더 와닿았어요. 중독 문제는 본인만의 의지로 해결하기 어렵고, 주변의 이해와 지지가 절실하니까요.
실제로 중독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입을 모아 말해요. 중독은 도덕적 나태가 아니라 뇌의 보상 회로가 재편되면서 생기는 일종의 ‘질환’에 가깝다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의지만을 강조하는 접근은 처음부터 절반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셈이에요. 가족이 함께 자리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나누고, 때로는 서로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는 시간 자체가 치료의 한 과정이 되는 거죠. 혼자서는 도저히 꺼낼 수 없었던 말들을, 안전한 장소에서 꺼내 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복의 물꼬가 트이는 셈이니까요.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문득, 우리 사회가 ‘회복’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회복과 치유에 관한 몇 가지 생각을 TOP 3로 정리해 볼까 해요.
TOP 1. 회복은 ‘함께’일 때 더 단단해진다
가족과 함께하는 치유캠프 소식이 주는 울림은 결국 ‘연대’에요. 혼자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 자체가 회복의 시작이라는 점을 다시금 느꼈어요. 저는 스케이트장에서 넘어질 때마다 옆에서 손을 잡아주던 동료들이 생각났어요. 작은 도움 하나가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요.
스케이트를 배울 때 가장 무서운 순간은 넘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넘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 찰나라고 해요. 몸이 굳고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지죠. 그때 옆에서 “괜찮아, 뒤에 있으니까 넘어져도 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균형이 잡혀요. 회복도 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넘어져도 괜찮다’는 안전감이 있어야 다시 일어설 용기가 생기는 거죠. 중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도 어쩌면 이 안전감일 거예요. 비난이 아니라 ‘네가 넘어져도 내가 여기 있다’는 신호 말이에요.
TOP 2.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독이나 과몰입을 단순한 ‘의지 부족’으로 치부해 버리면,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더 숨게 되기 쉬워요. 강원랜드의 시도처럼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나서서 치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비판적인 시각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회복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어요.
혹시 주변에 도박이나 약물 등 중독 문제로 법적 도움이 필요한 분이 있다면, 마약전문변호사 같은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어려울수록 정확한 정보와 전문 자문이 중요하니까요.
시선의 전환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아주 작은 언어의 차이에서 시작돼요. ‘중독자’라고 부르느냐, ‘회복 중인 사람’이라고 부르느냐의 차이요. 전자는 그 사람을 상태 그 자체로 규정해 버리지만, 후자는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언젠가 나아질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봐요. 낙인은 사람을 숨게 만들고, 숨은 사람은 도움을 청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죠. 결국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회복 여정을 앞당길 수도, 지연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TOP 3. 작은 실천이 만드는 변화
회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규칙적인 생활, 솔직한 대화, 그리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 같은 것들이요. 저도 공부에 지칠 때면 잠시 산책을 하거나 가족과 통화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곤 해요. 그 작은 시간들이 모여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더라고요.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작은 실천은 ‘혼자 하는 것’과 ‘함께 하는 것’으로 나눠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혼자 하는 실천은 나의 리듬을 되찾아 주고, 함께 하는 실천은 관계의 온도를 데워 줘요. 규칙적으로 잠들고 일어나는 것,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 같은 개인적 루틴이 회복의 뼈대라면, 가족과의 짧은 통화나 친구와의 산책 같은 관계적 루틴은 그 뼈대에 살을 붙이는 일이죠. 둘 중 하나만으로는 온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느낀 점이에요.
이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회복이란 결국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손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나 역시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요. 스케이트장에서 배운 균형 감각처럼, 삶의 균형도 조금씩 맞춰 가면 좋겠어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회복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분께 따뜻한 응원을 보내요.